애송시 ‘나그네’를 비롯해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꼽혀온 박목월(1915~1978) 시인의 미발표 육필시 166편이 12일 공개됐다. 특히 기존 서정시 계열과는 다른, 한국전쟁 당시 고아가 된 구두닦이를 그린 ‘슈샨보오이’를 비롯해 시대적 경향이 강렬하게 반영된 시도 발견됐습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미발표 육필시 166편이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박목월작품발간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공개됐다. 남정탁 기자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박 시인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택에 소장한 노트 62권과 경북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보관 중인 18권의 노트에서 발견된 박 시인의 미발표 육필시 290편 가운데 작품적 완결성을 갖춘 것으로 판단된 166편을 공개했다.
위원회의 우정권 단국대 교수는 “노트의 기록은 대체로 시인으로 공식 등단하던 1939년 무렵부터 타계 전까지 활동하던 거의 전 생애에 걸친 것으로 파악된다”며 “기존 발표 시를 제외하고 완성도, 주제성, 첨삭 과정의 의미 등을 중심으로 선별했다”고 기준을 밝혔답니다.
이번에 공개된 시들은 박 시인이 1930년대 후반부터 말년인 1970년대까지 쓴 시들로, 대체로 자연 풍경이나 일상적 생활, 동심을 담고 있지만 일부 시인의 삶이나 사랑, 신앙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시도 담겨 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이와 관련, ‘슈산보오이’에 대해 “6·25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소년의 모습을 그린 시는 완성도가 높고 단연 주목해 볼 만한 시”라며 “시인으로서 어린 소년을 보는 연민의 마음을 잘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박 시인의 장남인 박 명예교수는 “아버지의 노트는 어머니께서 따로 정리해 두셨고 6·25전쟁 당시에도 천장에 숨겨두면서까지 보관했는데, 어머니께서 20년 전에 작고하시고는 보자기에 싸여 있는 노트에 뭐가 써 있는지도 모르고 가지고 있었다”며 “누가 될까 걱정했지만, (시를 쓰는) 과정도 시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시인의 아들 박동규 교수가 말하는 '아버지 박목월' - 2014. 5. 29
아버지 너무 힘드시죠?" 집 앞 전봇대 아래 웅크리고 앉아 계시던 아버지를 본 큰아들이 안타까워 다음날 인사를 건넸다. 다섯 아이를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 밤까지 강의하며 가정을 꾸렸다. 안감이 다 닳은 양복을 걸치고 학생들 앞에 서는 아버지였다. "이놈아, 힘이 들 리가 있니." 아버지는 큰아들의 어깨를 잡으며 웃었다. "힘들 게 일하는 게 기쁨과 보람이 되는 건 너의 형제들이 사람답게 자라는 걸 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습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6~1978)과 그의 아들 박동규(75) 서울대 명예교수 사이의 일화다. 시인의 아들이 그때의 아버지를 추억하며 책을 냈다. 에세이집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강이)다. 박 교수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의 원형을 나와 아버지 사이에서 밝혀보려 했다"고 책을 낸 이유를 설명했다.
박 교수와 박목월이 쓴 글이 함께 엮였다. 시간을 초월해 주고받는 편지 같다. 박목월은 아들 박 교수에게 국문학과의 진학을 권했다고 했다. "책도 함께 쓸 수 있고…"란 아버지의 꿈을 아들이 이룬 셈이랍니다.
